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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노트/인문.사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Advice for Future corpse)

by 크라센 2020. 6. 27.

처음에는 죽음에 관한 책이어서 선뜻 손에 가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죽지만 대부분 일상에서는 인식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의식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의 끝이 다가올 때 한 시간 한 시간은 소중하겠지만 당장 우리의 삶은 가치 있게 보내기보다는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음을 바라보는 냉정함보다는 담담함과 침착한 위로가 느껴진다. 그저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잘 죽어갈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 친구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들 '죽어가는 환자에게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대해 말한다.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위독하거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보내는 것이 환자에게 무조건 좋은 것일까? 환자의 병시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임종 환자에게 무조건 음식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면 정말로 떠날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이제, 영원한 여행을 떠날 환자에게 짐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내가 지고 가야 할 것들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부터 시신이 되기까지의 우리의 자세와 이에 관한 조언이 있다. 마지막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애도를 통해 기쁨에 이른다. 그래서 이 책의 마무리가 마음에 든다. 죽음을 통해 어떻게 보면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인간적 두려움, 즉 남들의 시선에 대한 우려, 자존심, 체면 따위가 실은 별게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게 될 것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심장은 더 이상 지체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5월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지신 조부께서 끝내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조부는 내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셨다. 그분의 부고는 위독하다는 말이 들린 지 불과 이틀 뒤 이른 새벽에 들려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신 조부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의외로 담담한 느낌으로 돌아가신 이의 얼굴을 감쌀 수 있었다. 단지 그분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저자는 애통이 다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기회라고 했다. 애도를 하면서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 더없이 충실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